그녀의 시크릿 투자코드
home
☂️

제 1 화 _ 비도 오고 그래서, 그녀와의 재회

무리한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전 재산을 날리고 이혼까지 한 이 과장,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회사 동료인 안 주임의 집에 배달을 가게 되고, 우연히 만난 그녀와 비밀스러운(은밀한?) 사랑을 다시 꿈꾸게 되는데......

등장인물 소개

안주임 (30대 초반 솔로)

하는 일 : (낮) 판교의 대기업으로 이직하여 재직 중 (밤) 재테크
사는 곳 : 깔끔한 원룸 오피스텔에 혼자 거주
MBTI : 스터디를 하는 친구들과 정보를 교류하면서 본인의 투자는 계획적으로 논리에 맞게 진행하는 ESTJ

이과장 (40대 초반 이혼남)

하는 일 : (낮) 중소기업에서 15년째 근속 중 (밤) 퇴근 후 야식 배달, 택배 등 투잡 중
사는 곳 : 언덕에 있는 반지하 투룸 빌라에 혼자 거주
MBTI : ENFP였으나 이혼 후 자신감이 결여된 INFP가 되어 소시민처럼 살고 있음
“띵동”
초인종을 누르고 5초정도가 지났다. 산발적인 빗소리가 뒤섞인 어둠 속에서, 그녀가 사는 집의 대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겨울의 눈이 비가 되어 차갑게도 내렸던 그날 밤 10시 30분, 떨어지는 빗방울은 억제된 나의 감정처럼 고요한 그녀의 공간을 조금씩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그래왔듯이 손 하나만 살짝 나올 정도로 대문을 열어주었다. 아무 말 없이, 눈도 마주치지 않는 채, 그녀의 손은 내 손에 쥐어진 치킨 박스를 빠르게 잡아 끌었다. 추운 날 배달을 오면서 이미 내 손은 모두 얼어버렸고, 그녀와 손이 마주쳤던 순간은 불과 1초도 되지 않았다.
치킨 박스를 타고 스치는 그녀의 손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난 다음 배달을 하러 또 떠나야 하기에 내 손에 전해진 그녀의 온기가 채 사라지기 전에 문이 닫혀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때였다.
"저기요."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따뜻한 목소리는 비에 젖은 딱딱한 내 헬멧을 뚫고, 귓가에 정확히 스며들었다. 설렘과 기대보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혹시 내가 생맥주나 치킨 무를 빠뜨리고 배달을 한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며 뒤를 돌아보던 그 순간에 또 다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비를 너무 많이 맞으신 것 같아요. 괜찮으세요?"
이상한 느낌이다. 몇 번 배달을 와서 마주친 그녀였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혼 후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치킨 가게 사장님이 아닌 다른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 몹시 어색하다.
나의 모습은 비에 젖은 처량한 배달부였다. 이제는 ‘딸배’라는 소리에 굴복하고, 익숙해져 버린 지 오래다. 게다가 결혼생활까지 실패해서 ‘이혼남, 돌싱’이라는 꼬리표까지 얻게 된 쓸쓸한 40대 아저씨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멋이나 자신감이라는 것은 찾을 수 없다. 그런데 그녀는 왜 나를 부르는 걸까?
두뇌와 이성은 그녀를 향해 돌아보지 말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불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성급하게 뛰는 가슴은 어느새 그녀를 향해 돌아서 버린 뒤였다. 처음으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집 초인종을 누른 것은 치킨을 건네기 위한 단순한 행동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서로의 시선이 얽히고 말았다. 그녀는 헬멧 속 나의 눈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혹시, 이과장님 아니세요? RE물산 다니셨던......”
예상치 못한 그녀의 말에 식은땀이 흘렀다. 회사가 아닌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것도 배달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다니,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냥 도망갈까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칼로 자른 듯한 당돌한 단발머리의 그녀, 몇 년 전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안주임이었다.
"아...... 안주임, 오랜만이야.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신기하네. 너무 오랜만에 봐서 몰랐어."
"어머, 혹시나 했는데 진짜 이과장님 맞네요! 반가워요. 아직도 RE물산 계세요?"
"음...... 나야 비슷하지. 능력이 없어서 그런지 난 아직 거기 다녀."
"에이, 능력이 없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저도 과장님이랑 같이 RE물산 다닐 때 제가 알던 과장님은 재테크도 잘하시고, 예쁜 언니랑 결혼도 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워 했는데요."
"아…... 그랬지. 근데 나 일해야 돼서 나중에 인사하자."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잠깐 들어와서 몸 좀 녹이고 가세요. 차 한잔 드릴께요."
난 분명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려 했다. 아니 거절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대문을 활짝 열어둔 채 슬리퍼를 벗고,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난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따라 헬멧과 비에 젖은 신발을 신발장에 벗어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집 안으로 조금씩 깊게 들어갈 수 있게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녀의 집은 화이트 톤의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가구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순백색의 분위기는 밝은 조명과 어우러져서 비 오는 어두운 밤 공기를 환하게 비췄다. 곳곳에서는 향긋한 그녀의 향기가 퍼져 나왔다.
그녀의 집은 오피스텔 원룸이었다. 주방을 지나자마자 바로 그녀의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침대 위에는 따뜻하고 포근해 보이는 이불이 펴져 있었고, 치킨을 기다리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노트북 화면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난 어색하게 서 있었고, 그녀는 전기 포트에 물을 받고는 ‘딸깍’ 버튼을 눌렀다. 전기 포트에서 물이 끓으며 요란한 소리를 냈고, 끓어오르는 뜨거운 수증기처럼 우리 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떠돌았다. 서로의 어색한 목소리와 창 밖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그리고 반복적으로 울리는 시계초침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상황은 점차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했다.
다음화 예고 혼자 사는 그녀의 방에 들어가게 된 이과장은 본인의 이혼 스토리를 조심스럽게 꺼내기 시작하는데......

작가 소개

조훈희 순수문학 등단작가 겸 부동산학박사. 부동산과 컨텐츠를 결합한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현) 한양대학교 부동산융합대학원 겸임교수, 부동산 투자 및 개발회사 대표 '부동산 투자, 농사짓듯 하라', '밥벌이의 이로움' 등 저자 전) 현대캐피탈, 코람코자산운용, CBRE Korea 근무
◀︎ 웹소설 전체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