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랩 투자자의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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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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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_ 부린왕자의 고향

이렇게 해서 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린왕자가 살던 마을은 (1)군(君) 단위보다 좀 클까 말까 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서울, 인천, 대전, 광주, 부산 같은 큰 도시 말고도 다른 도시가 수백 개나 더 있고, 어떤 도시는 너무 작아서 KTX나 SRT 같은 고속철도조차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큰 아파트 단지 이름이나 지하철역 이름만 대면 자신이 사는 곳을 나타낼 수 있는 서울과 달리 작은 마을은 정확한 주소를 말해야 한다. 예를 들면 ‘XX면 OO리 958번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에게는 부린왕자가 살던 마을이 ‘소행성리 612번지’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 이 마을은 1990년에 어느 무명 (2)도시재생 전문가에 의해서 알려진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떠나버린 작은 마을을 아름답게 재생해서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도시재생 전문가의 작고, 아름다운 개발의 목적 때문에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건물주들이란 언제나 이런 식이다.
나중에 유명한 (3)디벨로퍼가 값 비싼 명품 양복을 입고, 이 마을에 있는 산을 깎아서 골프장과 리조트를 만들어서 분양하고, 세계적인 카지노를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큰 화면 속에서 엄청난 높이의 화려한 건물이 등장하는 역동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모두 그의 말을 믿고 그 마을이 아주 아름다우며 투자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이라고 말했다.
소행성리 612번지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하고, 그 지번까지 알려주는 이유는 건물주들 때문이다. 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로 다녀온 마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건물주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그 마을은 살기 좋냐? 앞에 예쁜 냇물이 흐르거나 새가 찾아오기도 하냐? 아름다운 산이 있어서 강아지랑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냐? 등의 말을 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들이 묻는 것은 “그 마을에 교통은 어떻지? 학군은 좋냐? 사람들의 직업과 생활 수준은 어떠냐? 주변에 안 좋은 시설이 자리 잡고 있냐? 평균 매수 단가는 어떠냐?” 등이다. 그제야 그 마을을 아는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건물주들에게 “창틀 밖에는 개나리가 피어 있고, 지붕에는 산새들이 놀고 있는, 고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라고 말하면,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 내지를 못한다. 그러나 “평당 1억 원이 넘는 집을 보았다”라고 말하면 그제야 그들은 “야, 그 집은 참 훌륭하구나!” 하면서 감탄한다. 건물주들은 다 그렇다.
그렇다고 그들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부린이들은 건물주들에 대해서 너그럽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도 부린이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부린왕자와의 추억을 이야기하자니 벌써 수많은 그리움이 밀려온다. 내 친구가 그 상자 그림을 들고 떠나간 지 벌써 세 번째 해가 지났다. 지금 여기에 그의 모습을 그리고, 그와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것은 내 마음속 그 친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친구를 잊는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마음에 맞는 친구를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만약 그를 잊는다면, 나 역시 부동산을 볼 때마다 숫자에만 흥미가 있는 건물주들처럼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린이 시절 낡은 5층짜리 아파트밖에는 그려 본 일이 없는 내가, 이 나이에 그 친구를 떠올리면서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은 힘든 노릇이다. 물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비슷한 그림을 그려 보기는 하겠다. 그러나 그 그림들이 모두 성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중요한 어떤 부분을 잘못 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이 너그럽게 이해해 주어야 한다. 내 친구는 도무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으니까. 아마 나도 자기와 같은 존재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불행히도 부린왕자처럼 상자 속에 들어있는 부동산을 꿰뚫어 보지는 못한다. 나도 어쩌면 조금은 건물주들과 비슷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 나도 늙었나 보다.
주석
1.
군 단위 : 도 및 광역시의 산하 행정 구역이자 기초지방자치단체이다. 대한민국에는 82개의 군이 있다. (2023년 6월 기준)
2.
도시재생 :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 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과 창출,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해 경제적, 사회적, 물리적, 환경적 측면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3.
디벨로퍼 : 부동산 개발자 또는 개발회사
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 입니다. 특정인물이나 단체, 직업, 종교, 지명, 사건 등 그 어떤 현실적인 부분과는 무관합니다

작가 소개

미스터 동글
동굴속에 숨어사는 INFJ형 부동산 투자자
저얼대 동그란 외모 아님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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