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과 정성 끝에 안주임은 이과장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그 둘은 그녀의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러 가게 된다. 그런데 그날 갑자기 그녀의 아버지가 사라지게 되는데……
캠핑을 다녀온 이후, 우리는 여느 연인들처럼 퇴근하고 함께 저녁을 먹기도 하고, 주말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우리에게는 특별한 순간들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갔고, 나의 설득 끝에 결국 안주임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러 가기로 했다. 그녀의 아버지를 처음 뵈러 가는 그날, 안주임은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핸들을 잡았다. 그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깊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과장님, 우리 아버지 뵈러 가는 거, 정말 괜찮으시죠? 당황하실 수도 있는데......”
안주임의 거듭된 질문에 마음이 아팠지만 난 그 감정을 이해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보다 그녀가 얼마나 더 힘들 것인지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응. 괜찮아. 어떤 모습이시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라도 편안하게 인사드릴께.”
안주임은 나의 말에 안도를 하고,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시동을 걸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수원에 있는 한 요양병원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저 멀리서 병실 침대에 걸터앉아서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흰머리의 노인이 보였다.
“아빠 나 왔어요.”
안주임의 말에 그 노인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오랜 병원 생활로 많이 수척해 보였지만, 안주임을 바라보자마자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예쁜 우리 딸 왔구나.”
“아빠 오래 기다렸지? 오늘 나 아빠랑 병원 밖에서 데이트 하려고, 오늘은 우리 같이 나가서 예전에 살던 동네 가서 놀자. 어때?”
“응, 좋아. 우리 그럼 원천유원지 가서 놀이기구 탈까? 아니면 오리 배 탈까?”
“아빠도 참. 원천유원지가 광교호수공원이 된지가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무슨 말이야.”
“우리 지난주에도 유원지가서 같이 오리 배 타고, 솜사탕도 먹고 그랬잖아. 어서 가자. 나 오리배도 타고 물 위에 떠 있는 식당에서 밥도 먹고 싶어.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이랑 유원지 가는 거 좋아.”
“그래 아빠. 우리 예쁘게 옷 입고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나들이도 하자.”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는 서로 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둘의 대화는 서로의 시간도, 서로의 대상도 어쩐지 다른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옆에 서 있는 나는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어린 아이처럼 딸만 바라보며 웃음 짓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친구가 말한 대로 걸음을 걸으실 때마다 매우 불편해 보였다.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 한 걸음 느리게 옮기시는 그녀의 아버지를 모시고, 우리는 광교호수공원 옆에 있는 롯데아울렛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그녀는 아버지의 불편한 걸음이 익숙한 듯 아버지의 손을 잡고 웃으며 걸어갔다. 나는 뒤에서 아무 말 없이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따라서 걸었다.
“도나스, 사러 가자.”
“왠 도넛? 아빠 그런 거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아니야. 우리 도나스, 사러 가자”
“알았어. 그럼 밥 먹고, 우리 도넛 사러 가자.”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새 옷도 몇 벌 샀다. 그리고 식사를 하기 위해 3층 식당가로 갔다. 식사를 하면서도 둘은 무언가 엇갈린 듯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웃으며 그녀와 계속 이야기를 했지만 마치 나는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저어……아버님, 안녕하세요. 저는 요즘 안주임과 교제하고 있는 이과장이라고 합니다.”
“네......”
나의 말에 그녀의 아버지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짧은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계속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안주임이 좋아하는 리츠 이야기라도 하면 관심을 주실까 해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 저희가 밥 먹고 있는 이 건물이 광교센트럴푸르지오시티에 위치한 롯데아울렛 광교점인데요. 직접 와보니 엄청 넓고, 영화관도 있고, 이렇게 맛있는 식당들도 있네요. 그런데 이건 ‘미래에셋맵스리츠’가 투자한 건물이라고 하더라고요. ‘미래에셋맵스리츠’는 아울렛처럼 이렇게 큰 상업시설뿐만 아니라 강남의 KG타워 같은 대형 오피스에도 투자하는 부동산 리츠라고 해요. 제가 이런 것을 다 어떻게 알았냐 하면요. 똘똘한 안주임이 다 알려주거든요. 정말 따님을 너무 예쁘고, 지혜롭게 키우신 아버님이 존경스럽습니다. 대단하세요. 하하하.”
“네......”
그녀의 아버지는 내가 무슨 말씀을 드려도 짧은 대답만 하고, 다시 안주임만 바라보았다. 식사가 끝나자 안주임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밖으로 나갔고, 난 아버지께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씀 드린 채, 그녀가 오기 전에 먼저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갔다. 계산을 하는 사이 화장실을 다녀온 안주임이 나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우리 아빠 어디 계셔?”
“응? 방금 까지 자리에 앉아 계셨는데?”
“뭐? 아버지 혼자 두면 안돼. 치매라고!”
그녀는 황급히 아버지를 찾으러 식당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울렛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안주임과 나는 그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아버지를 찾았다. 안주임은 매장마다 돌아다니면서 핸드폰 속 아버지 사진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이런 사람을 보지 못했냐고 물었다. 그렇게 여러 가게를 들렸고, 한 도넛가게에서 안주임이 사진을 보여주자, 도넛가게 점원은 구석에 앉아있는 그녀의 아버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녀의 아버지는 동그란 도넛 두 개를 휴지에 싸서 양 손에 들고, 지팡이를 내려놓은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안주임은 달려가서 두 손으로 아버지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얼마나 찾았다고, 왜 이러는 거야. 속상하게. 언제부터 아빠가 이런 거 좋아했다고.”
“도나스 좋아하잖아. 우리 딸이 좋아하잖아. 난 우리 딸 학교 갈 때 챙겨주려고 샀지. 맨날 아빠 일 끝나고 도나스 사오면 우리 딸 자고 있고, 아빠는 새벽에 또 일하러 나가야 되니깐. 오늘은 미리 챙겨주고 싶었어.”
“왜 아빠가 일을 나가. 학교는 누가 간다는 거야. 아빠!”
그녀는 아버지를 끌어안고 흐느끼며 소리쳤다.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소리치는 그녀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야 아빠. 소리쳐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심지어 나 조차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아버지를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양 손에 도넛을 꼭 쥐고, 허공만 바라보고 계셨다. 그렇게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의 관계는 마치 하얀 도화지에 단 두 명만이 존재하는 외롭고도 슬픈 그림 같았다.
다음화 예고
안주임은 치매를 앓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보인 안주임은 다시 마음의 문을 닫으려 하는데……
작가 소개
조훈희
순수문학 등단작가 겸 부동산학박사. 부동산과 컨텐츠를 결합한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현) 한양대학교 부동산융합대학원 겸임교수, 부동산 투자 및 개발회사 대표
'부동산 투자, 농사짓듯 하라', '밥벌이의 이로움' 등 저자
전) 현대캐피탈, 코람코자산운용, CBRE Korea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