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랩 투자자의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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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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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화 _ 호수공원의 달빛, 누구도 괜찮지 않았던 밤

둘은 아버지를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광교호수공원을 걸으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그렇게 그녀가 가지고 있던 아픔을 모두 듣게 된 이과장은 그녀를 이해하고 안아주려 하는데……
그날 밤 우리는 아버지를 병원에 다시 모셔다 드리고 밖으로 나와서 말없이 광교호수공원을 걸었다. 밤 하늘의 달빛과 높은 아파트의 불빛이 어우러진 호수의 물은 은하수처럼 반짝였다.
“안주임, 미안해. 나 때문에......”
“괜찮아요. 익숙한 일 이예요. 제가 과장님께 미리 저희 아버지에 대해서 더 많이 말씀 드렸어야 하는데, 말씀 드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왜 그랬어. 난 뭐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데.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당신 곁에 있을 수 있는데.”
“과장님도 진짜 제 모습을 보면 실망하실 것 같았어요. 제 친구들처럼 제 아버지를 보고, 저에 대해서 실망하실까 봐……”
“아니야.”
작아지는 내 목소리를 듣고, 안주임은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리면서 말했다.
“아직도 실망할 일이 더 있는데……”
그녀는 그 동안 사람들에게 쉽게 털어놓지 않았던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슴 속에 담겨있던 슬픔은 바람을 타고 조금씩 흘러 넘쳤다. 우리는 호수에 비친 불빛을 보며, 그 슬픔이 더 쏟아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발을 떼고 있었다.
“여기 광교호수공원은요, 지금은 고층아파트도 많고, 백화점도 있는 화려한 곳이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완전 시골이었어요. 이 호수는 원천유원지였어요. 작은 놀이공원도 있었고, 저는 이 근처 동네에서 아빠랑 단 둘이 살았어요.”
난 그녀가 왜 아버지랑 단둘이 살게 되었는지, 어머니는 어디 계신지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엄마는 저를 낳다가 돌아가셨대요. 아빠는 제가 어렸을 때,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시다가 크게 다치셨고,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셨는데 그때부터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직업을 찾기 힘드셨죠. 그래서 아빠는 이 유원지에 있는 놀이동산에서 청소를 하시면서 저를 키웠어요. 놀이동산이 개장하기 전에, 그리고 놀이동산이 끝났을 때, 그렇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시간에 살아가며 저를 키웠죠. 그래서 그런지 저는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아빠 얼굴조차 거의 못보고 자랐어요. 제가 깨기 전에 나가셔서, 제가 잠들면 집에 돌아오셨거든요.”
안주임의 독백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계속되었다.
“우리 아빠는 그렇게 일이 끝나면, 항상 매점 아주머니가 주시는 그날 팔고 남은 도넛을 싸오셨어요. 처음엔 그 도넛이 진짜 좋았는데, 금방 질려버렸죠. 그래도 혼자 있을 땐, 배도 고프고 아빠 생각도 나서 매일 도넛만 먹었어요. 아빠는 그것도 모르고 내가 도넛을 진짜 좋아하는 줄 알고 매일 도넛만 싸오셨죠. 그렇게 매일 도넛을 먹어서 그런지 도넛처럼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로 살았나 봐요. 사람들을 만나도 공허하고, 무언가 성공을 해도 공허하고, 그럴 때마다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았죠. 그렇게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그랬구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서, 알바도 하면서 나름대로 돈을 벌게 되었어요. 그렇게 생활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는데, 그때부터 아빠는 조금씩 기억을 잃어갔어요. 아이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던 놀이동산이 사라지는 것처럼, 아빠의 기억도 점차 사라져 갔죠. 결국 치매 진단을 받았고, 아빠의 기억은 그 놀이동산에서 멈춰버리셨어요.”
“......”
“그렇게 되자 더 이상 아빠를 혼자 집에 두고, 돈을 벌러 나가기도 어려워졌어요. 그때부터 아빠를 요양시설에 모셨어요. 저도 살아보려고 그랬어요.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뿐인 딸이 힘들게 키워준 불쌍한 아빠를 버렸다고 욕을 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살아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어요.”
그녀는 어렵게 말을 하면서 조금씩 울고 있었다. 컵에 가득 담긴 물이 흘러 넘치는 것처럼 그녀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를 안아주고, 등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고생했어. 그 동안 정말 고생했어. 안주임은 잘해왔어. 누구보다 잘해왔어.”
“흑흑흑”
“이제 내가 곁에서 평생 함께 하면서 지켜줄게. 도넛처럼 만들어진 구멍, 내가 더 큰 사랑으로 채워볼게. 내가 해볼게. 괜찮아. 정말 괜찮아.”
누구도 괜찮지 않았던 그날 밤, 내 품 속에서, 한없이 크고 강해 보였던 안주임은 아주 작고 여린 존재가 되어 하염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다음화 예고 구멍이 뚫린 도넛처럼 마음에 구멍을 갖고 살아온 안주임을 보듬어주는 이과장. 이제는 행복한 일만 가득할 것 같은 둘의 미래에 또 하나의 사건이 남아있는데……

작가 소개

조훈희 순수문학 등단작가 겸 부동산학박사. 부동산과 컨텐츠를 결합한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현) 한양대학교 부동산융합대학원 겸임교수, 부동산 투자 및 개발회사 대표 '부동산 투자, 농사짓듯 하라', '밥벌이의 이로움' 등 저자 전) 현대캐피탈, 코람코자산운용, CBRE Korea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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