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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_ 부린왕자를 처음 만난 3년전 그 날

부동산박사가 된 후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없어 외롭게 지내왔다. 강남역에서 늦은 시간까지 나의 부동산지식과 경험을 원하는 건물주들과 술을 마시고, 지갑과 휴대폰을 모두 잃어버렸던 3년 전 그날 까지는 말이다.
그 날은 피곤했는지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신을 잃었고,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강남역 지하상가에 혼자 누워 있었다. 내가 왜 여기 누워 있는지 중간에 필름이 끊겨서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미 지하철 막차는 끊겨 있었다. 지갑도 휴대폰도 없었으니 어쩔 수 없이 첫 차가 올 때까지 혼자서 버텨보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는 강남의 높은 빌딩들 사이,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쓸쓸하게 잠이 들었다. 드넓은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서 혼자 뗏목을 타고 있는 조난자보다도 훨씬 외로운 신세였다. 그러니 선잠이 든 상태에서 조그마하고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는 머리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후다닥 일어나 눈을 비비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의젓한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부린왕자가 보였다. 여기에 있는 그림이 내가 나중에 그린 가장 근사한 그의 초상화다.
물론 내가 그린 그림은 실제 그의 모습에 비해서는 훨씬 덜 아름답다. 이것은 내 탓이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 건물주들을 만나서 그림의 길을 일찌감치 포기했고, 내가 그려본 것은 안전진단 D등급을 받은 낡은 아파트밖에 없으니까.
아무튼 나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부린왕자를 쳐다보았다. 여기서 내가 지하철이 끊긴 매우 늦은 시간에 강남역 지하상가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린왕자는 술을 마신 것 같지도 않았다. 몹시 피곤하다든가, 배가 고프다든가, 아니면 무서워서 벌벌 떤다든가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강남 한 가운데에서 만났지만 길을 잃은 사람처럼 보이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이윽고 나는 말했다.
부린왕자는 아주 중대한 일을 부탁하는 것처럼 가만히 서서 같은 말을 되뇌었다.
너무도 급작스럽게 이상한 부탁을 받으면 감히 그 일을 거절하기 어려운 법이다. 집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마주하고 있는 자리에서 이것은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과 볼펜을 꺼냈다. 그리고는 부동산에 대해서 행복한 가정이니 안정된 삶이니 하는 것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에게 좋은 부동산을 찍어주는 방법을 모른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부린왕자는 대답했다.
나는 좋은 부동산을 찍어본 일이 도무지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릴 줄 아는 두 가지 그림 중에서 하나를 그렸다. 3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였다. 그런데 그림을 본 부린왕자는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했다.
하는 수 없이 집을 한 채 그려줬다. 그는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또 그렸다. 부린왕자는 상냥하게 방긋 웃었다.
그래서 또 다시 그렸다. 그러나 이 그림도 앞의 그림들처럼 거절당했다.
나는 밀려오는 숙취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렇게 끼적거린 그림을 보여주고, 한마디 툭 던졌다.
뜻밖에도 이 그림에 부린왕자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한참이나 그림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이렇게 나는 부린왕자를 알게 된 것이다.
주석
1.
역세권 :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보통 500m 반경 내외. 도보로는 5~10분 안팎인 지역을 뜻한다.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2.
초품아 :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라는 뜻으로, 학교가 가까워 아이들의 안전통학이 가능한 아파트 단지를 가리키는 부동산 신조어. 아파트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3.
사전전검 :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이 지어진 집을 미리 살펴보고, 하자가 있으면 시공사에 보수를 요구하는 과정이다. 보통 입주 한두 달 전에 3~4일간 진행된다.

작가 소개

미스터 동글
동굴속에 숨어사는 INFJ형 부동산 투자자
저얼대 동그란 외모 아님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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