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에 성공한 기쁨도 잠시, 이과장의 작은 실수로 그녀는 화를 내며 호텔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렇게 오늘의 행복은 슬픔으로 묻혀버리는데……
프로포즈에 성공한 그 날 밤. 그녀의 친구들은 진심을 다해서 나를 도와줬고, 우리 둘의 사랑을 축하해줬다. 그러나 그녀의 친구들은 그랜드머큐어 호텔의 분위기에 심취해서인지 도저히 호텔에서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프로포즈가 끝났는데 마치 그런 일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레스토랑에 다시 내려와서 와인을 마시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안주임 너 진짜 연기 쩔더라. 난 거절하는 줄 알았다니까?”
“맞아. 그러면서도 이과장님 마음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이 요거요거 아주 요물이던데?”
“너무 부럽다 얘. 나도 이런 프로포즈 받아 봤으면……”
그녀의 친구들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더니 그녀의 친구들은 요즘 유행하는 부동산 라이프 채널 시티폴리오(Cityfolio)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시티폴리오의 새로운 컨텐츠인 웰레트, 리츠 용어 해설집, 핀셋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부린왕자를 보면서 ‘세상에 이런 부동산 블랙 코미디가 어디 있냐’며 깔깔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다들 리츠 투자의 전문가인 만큼 눈치도 전문가였으면 좋겠지만 눈치 하나는 빵점짜리 친구들처럼 느껴졌다. 난 이 호텔에서 그녀와 단둘이 있고 싶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화장실에 가는 척 자리를 빠져 나와서 그녀에게 몰래 카톡을 보냈다.
‘안주임, 오늘은 우리 둘만의 날인데, 친구들 보내고 둘이 있자. 응?’
카톡을 보내자마자 그녀와의 대화 창 옆에 있던 숫자 ‘1’이 바로 사라졌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그녀의 답장은 오지 않았고, 난 약간 속상한 마음으로 다시 자리에 돌아왔다. 조용히 자리에 앉자 그녀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면서 한마디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에이, 이과장님. 저희들 집에 보내고 안주임이랑 둘이 뭐 하려고 그랬어요? 호호호.”
“이과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매우 응큼한 남자네요. 살아있네. 살아있어.”
“안주임이 섹시하긴 하죠. 이과장님 오늘 잠 못 자는 것 아니예요? 하하하.”
그녀의 친구들이 한마디씩 할수록 내 얼굴은 점점 더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난 옆에 있는 안주임에게 인상을 쓰고 물어봤다.
“안주임. 내가 카톡 보낸 걸 친구들한테 다 말한 거야?”
“아니, 다같이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시티폴리오 보면서 이벤트 공유하고 있었는데, 과장님이 그때 카톡을 보내면 어떡해요?”
“맙소사. 그럼 다 본거야?”
“당연하죠. 그런데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저한테 인상 써요?”
“아니, 난 인상 쓰는 게 아니라……”
“뭐야. 방금 평생 내 곁에서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프로포즈한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인상을 써요?”
“아니, 그런게 아니라.”
“됐어요. 어이가 없네 진짜”
“미안해.”
“뭐가 미안해요?”
“인상 써서 미안해.”
“과장님은 진짜 여자 마음을 모르는구나. 제가 그것 때문에 화내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 뜻은 아니었어, 화나게 해서 미안해.”
“아, 제 말은 그게 아니라고요. 사람을 왜 점점 이상하게 만들어요?”
“점점 이상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와…… 진짜 별꼴이다.”
“미안해. 별꼴로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
“아, 됐어요. 그만해요. 우리 오늘 있었던 일은 없던 것으로 해요.”
그녀는 그렇게 갑자기 핸드백을 집어 들더니 레스토랑 밖으로 나가버렸다. 난 황급히 꽃다발과 옷을 챙겨서 그녀를 부르면서 쫓아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렸다. 난 그녀를 잡기 위해서 계단으로 뛰어내려갔다. 숨도 쉬지 않고 1층까지 내려갔지만 호텔 로비는 적막하고 고요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간 것 같았고, 난 호텔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그녀를 찾을 수는 없었다. 어둡고 싸늘한 밤 공기와 호텔 로비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들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갑자기 모든 것을 다 잃은 마음으로 몇 분을 멍하니 서 있었다.
“카톡!”
축 쳐진 어깨 사이로 카톡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을 보니 안주임이 보낸 것이었다.
‘이과장님, 호텔 뒤 The Garden 산책로로 오세요.’
호텔 옆에는 오솔길처럼 산책로가 있었고, 그 산책로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에는 작은 조명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들어가자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으슥한 곳에 작은 정자가 있었다. 안주임은 거기에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왜 이제 와요. 한참 기다렸잖아.”
“안주임. 여기 있었어? 미안해. 난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이 바보, 내가 진짜 화난 것처럼 보여요?”
“응? 화난 것 아니야?”
“오늘 같은 날 왜 화를 내요?”
“그럼 뭐야?”
“친구들이 도저히 집에 안 갈 것 같아서 연기했죠. 그냥 말로 해서는 그 자리에서 밤새도록 놀릴 친구들이거든요. 이렇게 해야 친구들이 집에 가죠.”
안주임의 대답을 듣고, 난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다시 그녀를 꽉 안고 말했다.
“이런 얄궂은 꾀돌이 같으니라고, 내가 그래서 안주임을 사랑한다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의 입술은 급격하게 빠른 속도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 뜨거운 사랑은 다시 호텔 문을 열게 해주었고, 엘리베이터를 지나 객실로 들어서는 순간 폭발할 듯한 정열과 함께 우리는 새로운 내일을 향해 함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음화 예고
프로포즈까지 무사히 마친 이과장. 이제 본격적으로 어머니께 안주임을 인사시켜 드리고 결혼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겨버렸다.
작가 소개
조훈희
순수문학 등단작가 겸 부동산학박사. 부동산과 컨텐츠를 결합한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현) 한양대학교 부동산융합대학원 겸임교수, 부동산 투자 및 개발회사 대표
'부동산 투자, 농사짓듯 하라', '밥벌이의 이로움' 등 저자
전) 현대캐피탈, 코람코자산운용, CBRE Korea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