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지하상가에는 만남의 광장이 있다. 일을 마치고 강남역으로 돌아오니 멀리 부린왕자가 의자에 앉아 다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이 들렸다.
그리고 잠깐 멈췄다가 “아니야! 위치는 맞지만, 지번이 여기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상대편에서 무슨 대답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대로 만남의 광장을 향해 걸어갔고, 부린왕자와 함께 서류를 보고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부린왕자는 그에게 다시 말을 건네었다.
나는 약 2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와 대화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잠시 침묵하더니, 부린왕자는 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 발을 멈칫했다. 그러나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서야 나는 부린왕자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았고, 깜짝 놀랐다. 30초 안에 현란한 말솜씨로 부동산 계약을 하게 하는 기획부동산 컨설팅업자가 부린왕자에게 계약서를 넘겨 받고 있지 않은가!
나는 계약을 취소시키려고 그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발소리를 들은 컨설팅업자는, 마치 스며들어가는 물줄기처럼 강남역 지하상가의 수많은 사람 속으로 소리 없이 걸어갔다. 그는 별로 서두르지도 않는 듯했지만, 굉장히 재빠른 느낌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가벼운 통화를 하는 모습을 한 채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를 쫓던 발길을 돌려 부린왕자에게 다가갔고, 하얀 눈처럼 창백해진 그를 품에 안았다.
나는 그가 들고 있던 봉투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부동산 매매계약서가 있었고, 매매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토지는 도로에 붙어있지 않아 건축이 불가능한 맹지였다. 그뿐만 아니라, 경사도가 30도가 넘는 임야에, 토지 소유권조차 지분별로 나뉘어 있었다. 그렇게 소유권자 18명의 도장이 앞과 뒤, 옆에 빼곡히 찍혀 있었다. 토지를 지나는 도로가 생기면 가격이 10배 이상 뛸 거라고 써 있는 현란한 사진이 그려진 출력물도 한가득 들어있었다.
그 서류들을 보며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서류뭉치를 들고 있는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더니 양팔로 내 목을 껴안았다. 그의 가슴이 카빈총에 맞아 죽어가는 새처럼 뛰는 것이 느껴졌다.
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 입니다. 특정인물이나 단체, 직업, 종교, 지명, 사건 등 그 어떤 현실적인 부분과는 무관합니다
작가 소개
미스터 동글
동굴속에 숨어사는 INFJ형 부동산 투자자
저얼대 동그란 외모 아님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