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첫차를 기다린지 여섯 시간이 흐른 터라, 관광버스 운전사 이야기를 들을 때 나에게는 단 한 톨의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린왕자는 나를 들여다보며 내 생각과 다른 말을 했다.
나는 맥이 탁 풀렸다. 불 꺼진 지하상가에서 무턱대고 좋은 부동산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그렇지만 어쩐지 부린왕자를 말릴 수 없어, 그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 말없이 걸어서 지하상가 밖으로 나갔을 때, 하늘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으며 새벽 공기에 맞춰 청소를 하는 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질문하지 않았다. 그에게 물어봐도 내가 원하는 대답은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한참을 걷다가 피곤한 듯 앉았다. 나도 그의 옆에 앉았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윽고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한 뒤에 말없이 셔터가 내려져 있는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나는 언제나 부동산을 좋아했다. 부동산을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침묵 속에 무엇인가 빛나는 것이 있다.
부린왕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뜻밖에도 부동산에 담긴 이 신비로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렸을 적 나는 오래된 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 집에는 보물이 묻혀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아무도 그 보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쩌면 누구도 찾아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보물에 대한 소문 덕분에 내가 살던 집은 매력적이었다. 어떤 가치가 있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부린왕자에게 말했다.
부린왕자가 기쁜 마음으로 잠이 들기에, 나는 그를 품에 안고 다시 강남역 지하상가로 내려갔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마치 깨지기 쉬운 보물을 안고 가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 그보다 더 여리고 아름다운 존재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새하얀 이마, 조그맣게 감긴 눈, 바람에 나부끼는 얇은 머리카락들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부동산의 모습은 오직 겉모습, 화려한 광고와 자극적인 이야기들뿐이야. 부동산 투자에 가장 중요한 실수요와 시장은 눈에 잘 안보이고, 그것을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들어가니까……’
반쯤 벌어진 그의 입술이 빙그레 웃음을 머금은 것을 보고 이런 생각도 했다.
‘잠이 든 부린왕자가 이렇게 깊이 내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이 아이의 꾸준함과 성실함, 그리고 잠을 자는 동안에도 등불의 불꽃처럼 마음 속에서 빛나고 있는 삶에 대한 아름다운 생각 때문이야……’
이렇게 지하상가를 걸어갈 무렵, 첫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 입니다. 특정인물이나 단체, 직업, 종교, 지명, 사건 등 그 어떤 현실적인 부분과는 무관합니다
작가 소개
미스터 동글
동굴속에 숨어사는 INFJ형 부동산 투자자
저얼대 동그란 외모 아님 주의